이상 살펴본 바에 따르면,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콰인주의자들의 '유의미성'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러한 기준 차이를 잘 보여준다.
(1) 도날드 트럼프는 개샹년의 자식이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위의 (1)과 같은 문장을 의미에 의해서 참인 분석 명제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또는 관찰가능한) 종합 명제도 아니라는 이유로 무의미한(즉, 참도 거짓도 아닌) 문장이라고 봤다. 즉, 논리 실증주의적인 방식의 유의미성 기준은 '분석/종합의 구분'이다.
반면에, 콰인주의자들은 위의 (1)이 어떤 식으로든 양화술어논리로 형식화가 가능하다면 유의미하다고 본다. 어떤 진술이든지, (진술이라는 말 자체가 양화술어논리로 형식화 가능한 것들이라고 할 때) 유의미하다고 주장될 수 있다(달리 말해, 형식화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참 또는 거짓으로 주장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콰인주의자들은 형이상학적 진술과 비-형이상학적 진술의 구분을 불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구분을 마련하는 토대인 분석/종합의 구분도 콰인주의자들에 의해서 거부된다.
8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