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실증주의 vs 형이상학: 비교 (8) 좋은 이야기들

콰인적인 방식의 형이상학에서는 존재 양화사로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양화사(∃)를 통해서 표현되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 양화사에 대한 부정(~∃)으로 표현된다. 이로써 기존의 논리 실증주의적인 방법에 더해서 존재 등의 형이상학적 개념이 포함된 진술을 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콰인으로부터 더 시간이 흘러서, 분석철학자들 사이에서 양상성(modality) 개념 및 본질주의(essentialism)에 의한 형이상학이 시작되었다. 양상 형이상학 및 본질주의 형이상학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철학자는 솔 크립키(Saul Kripke)다. 크립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몇몇 진술들은 본질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1) 필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다.
(2) 모든 고양이는 동물이다.
(3) 빌 클린턴은 인간이다.
(4) 조지 W. 부시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위의 (1)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기 동일성(self-identity)을 진술한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의 저자',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문하생',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등의 '그러그러한 것'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됨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것, 또는 본질적인 속성이다. 크립키는 (2)와 같은 문장, 즉 고양이의 동물 됨도 고양이에게 본질적이라고 본다. 만약 고양이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고양이처럼-생긴-자동로봇이었더라면,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의 (3)이 말하는 빌 클린턴의 인간됨도 빌 클린턴에게 본질적이다. 만약 빌 클린턴이 달걀 후라이였다면, 빌 클린턴은 빌 클린턴이 아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의 (4)에서 말하는 조지 W. 부시의 분자로 구성됨도 조지 W. 부시가 지니는 본질적인 속성이다. 물리학에 따르면, 만약 조지 W. 부시가 분자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조지 W. 부시는 조지 W. 부시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논리 실증주의를 밑바닥 토대로 삼아서 그 위에 형이상학적인 발달을 시도하는 일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