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환원주의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 좋은 이야기들

의미 환원주의란, 의미있는 진술들이 감각적 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로 환원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설명이 부족하여,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다소 어려운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의미있는 진술들이란, 진술 또는 문장 또는 명제 등등 소위 완전한 주어-술어 구조로 된 이른바 문장 단위의 언어 표현이, 참 또는 거짓의 진리값을 갖는 상태에 놓인 - 그런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것은 문장이든 진술이든 명제이든, 일단 문장 단위의 언어표현으로, 이러한 언어표현은 참 또는 거짓의 진리값을 갖지만, '훨헙헛 할훠허 피리리 스치오 펍펍'이라는 말은 그것이 만약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표현이 아니라면, 설령 외국어더라도, 참 또는 거짓의 진리값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감각적 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란 뭘까. 예를 들어, '이것은 파랗다'라든지, '철수는 철수의 앞에 놓인 머그컵에 농도 진한 가래침을 90도 각도의 수직방향으로 높이 2미터에서 뱉었다'라든지 등등은 다소 시각경험을 언급하는 듯한, 진술인 것 같고, '영희는 철수의 귀에 '야이 멍멍아'라는 소리를 발화했다'라든지 '옆집 고양이는 희한하게 야옹-이 아니라 왈왈-이라고 소리낸다'라든지 등등은 청각경험을 언급하는 듯한 진술인 것 같다. 이러한 진술들은 감각경험을 언급하는 진술들이고, '경제적 지표는 매우 세련된 심포니 같은 흐름을 타고 마이크 타이슨의 어퍼컷 같은 그런 힘찬 스타일로 형이상학적 위기감을 더욱더 진하게 고조시켰다'라는 말은 우리의 오감으로 이해될 수 있는 표현이 아닌 다소 은유적인 형이상학적인 문학적인 표현 내지는 진술일 것이다. 아무튼 앞서 언급했던 감각경험을 나타내는 진술들을 한국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의 자연언어가 아닌, 논리적 구조, 이를테면, 'A는 B다', '모든 A는 B다' 등등 논리적 연결사와 기호가 포함된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이 곧 감각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인 것이다. 앞서 '모든 개는 동물이다'는 양화논리로, '모든 x에 대해, x가 개라면 x는 동물이다'라고 논리적 구조로 나타내어질 수 있으며, 이와 동치인 다른 형식들로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미 환원주의는, 의미있는 진술이 곧 감각적 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로 환원된다고 말함으로써, 무엇을 의도하는 것일까. 물론 의미 검증주의 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의미 검증주의 이론에 대해서 논의를 잠시 제쳐두고, 일단 의미 환원주의에 대해서 좀 더 파고들어볼까한다. 의미 환원주의 에 따르면, 의미있는 진술은 감각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로 환원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영희는 철수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의미 환원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이러한 문장이 의미 있다고 말해질라면, 참 또는 거짓의 진리값을 지니는 문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희는 철수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이 의미있기 위한 조건으로, 의미 환원주의자들은, 첫째, 그 문장이 진리값을 지녀야 하고, 둘째, 그 문장이 감각경험을 나타내는 논리적 구조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다면, '영희는 철수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은 '영희는 철수를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 영희는 철수를 볼 때 그러그러한 기분좋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 영희는 철수에게 '좋아한다'등의 말을 철수를 가리켜서 발화한다 & 영희는 철수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 영희는 철수에게 연애편지를 전송한다 ... 등등 ...' 이런 식으로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는 것이 자연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현상들의 집합, 또는 오감으로 관찰가능한 현상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말로 환원되어야, 더 나아가서는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을 그런 식으로 개념분석함으로써, 그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는 문장의 유의미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콰인이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도그마'에서 비판대상으로 삼는, 두 번째 도그마인 것이다... 헐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