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원리에 관하여 좋은 이야기들

현대영미철학에서의 언어철학에서는 자비의 원리(principle of charity)라는 것이 있다. 자비의 원리는, 언어 해석자가 해석 대상의 언어를 최대한 해석자 자신의 언어와 일치하게끔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똘똘이가 밍밍이의 언어를 해석한다고 해보자. 똘똘이는 자비의 원리에 따라서 밍밍이의 언어를 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밍밍이의 언어로 '잉잉잉잉'이란 똘똘이의 언어로 '아- 너무 좋아'일 때, 똘똘이는 밍밍이의 '잉잉잉잉'이라는 말을 '아- 너무 좋아'라고 해석해야지, '니가 하는게 더 나을껀데'라거나, '도중에 전화가 와서'라는 식으로 다르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흔히 언어철학 교재들에서 설명하는 예시적인 것들이고, 실제로 자비의 원리를, 그 원리 탄생 초창기에 주창한, 데이빗슨, 콰인 등의 용법은, 해석 대상의 언어를 술어논리 등의 형식논리학으로 해석할 때 (그리고 데이빗슨과 콰인은 언제나 해석 대상의 언어를 술어논리로만 해석했고 해석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그 해석 대상의 언어를 술어논리로 해석하기 위한 원리로 생각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 여성 료리(38세 여성)가 *꽐롸꽐라*라고 말했고, 이는 한국어로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고 한다고 해보자. 이 때 한국인 해석자 김돌팔이, 료리의 언어 표현 *꽐롸꽐라*를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언어 표현으로 해석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억지로 그 말을 *어떤 보신탕은 맛있다*라고 해석했다고 해보자. 이 경우 김돌팔은 자비의 원리에 어긋나는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꽐롸꽐라*는 료리의 언어로 다음의 경우에 다음의 경우에만 참이다: 어떤 x에 대해, x는 보신탕이고, x는 맛있다*라고 하면 자비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언어 표현은 다양한 동치적 논리적형식으로 표현가능하며, 해석자 김돌팔은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언어 표현을 *모든 x에 대해, x가 개라면, x는 동물이다*라거나 *모든 x에 대해, x가 개가 아니거나, 동물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라거나 *어떤 x에 대해, x가 개이고, x가 동물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하거나 모두 자비의 원리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모든 개는 동물이다*를 *어떤 보신탕은 맛있다*라는 의미에 해당하는 술어논리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틀린 해석이다. 
데이빗슨과 콰인 모두 언어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형성된 인공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관습을 무시해버린 해석은 아예 의미가 통하지 않는 해석이 된다. 만약 알리시아 테일러가 *Ah, keep going*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코리 테일러가 *We must respect the will of the individual*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면, 이는 자비의 원리에 위배되고, 합리성에서 벗어난 해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 옳다. 헐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