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적 대상에 관한 콰인의 비판 좋은 이야기들

명제적 대상이란, 진리값을 보유하면서, 태도를 나타내는 문장의 종속절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똘이는 하늘이 높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문장은 똘이의 태도를 나타내는 문장인데, 여기서 '하늘이 높다'라는 것은 '똘이는 하늘이 높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문장의 종속절이고, 즉, '똘이는 하늘이 높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문장에서 '하늘이 높다'라는 것이 명제적 대상에 해당한다.
이러한 것은 일상어법에 있어서 다소 당연하고 사소한 것인데, 철학적 논의에 접어들면, 명제적 대상에 관한 논의는 좀더 복잡하고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명제적 대상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인지, 단순히 언어적으로 만들어진 대상인지 등이 논의될 수 있다. 그런데 콰인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명제적 대상을 비판한다. 
철학적으로 콰인 이전에, 프레게의 전통을 따르는 언어철학자들은, 'S가 p라는 것을 믿는다', 또는 'S가 p라는 것을 ...한다'라는 식으로 태도를 나타내는 문장에서 p가 존재론적으로 무엇이든지 간에, 즉 실재하는 플라톤적 개체이든, 아니면 단순히 개념적 혹은 언어적으로 만들어진 유명론적 개체이든, 전체 문장의 형식에 있어서 p, q, r 등으로 축약되거나 상정되는 일종의 이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봤다. 그런데 콰인은 이런 식으로 태도 문장을 나타내면 양화사의 측면에서 볼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모든 개는 동물이다'라는 것을 p라는 기호에 축약해서, '소영이는 p라는 것을 믿는다'라는 태도 문장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모든 개는 동물이다'를 단지 p라는 기호로 축약하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기호화 또는 진리값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콰인의, 명제적 대상에 관한 비판의 핵심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든 개는 동물이다'는 물론 문장논리의 형식으로 볼 때 긍정적인 문장이고 p, q, r 등의 문장논리 기호로 형식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양화논리로 차원을 높이게 되면, '모든 개는 동물이다'는 양화적 문장, 즉 (∀x)(x는 개다 → x는 동물이다) 라는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콰인이 지적하는 것처럼 보편양화사는 부정기호와 존재양화사로 다시 표현될 수 있는데, 위의 '모든 개는 동물이다'는 양화논리로 ~(∃x)(x는 개다 & ~x는 동물이다)라고 정확하게 같은 진리값을 갖는, 형식상의 동치로 표현될 수 있다. 이 경우, 부정기호가 문장의 맨 앞에 위치하기 때문에 '모든 개는 동물이다'를 단순히 긍정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콰인은, 태도문장과 양화사를 함께 고려하면, 단순히 'S는 p를 믿는다'라는 형식으로 태도문장을 명제적 대상과 엮어서 형식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본다. 위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개는 동물이다'는 보편양화사 문장으로 나타낼 때는 p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문장과 정확히 같은 동치문장인 부정기호와 존재양화사 문장으로 나타낼 때는 ~p로 표현된다. 즉 단순히 p, q, r 등으로 태도 종속절을 명제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문장의 진리값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으며, 콰인이 제안하는데로 양화논리를 사용하여 태도문장을 표현해야 더 정확하게 문장의 진리값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요시!!! 스바라시!!! 오홈마니 반메홈!!! 오즈라!!!